[2004년 7,8월호] 귀농일기 - 최종자(1기) :: 부산귀농운동본부(구-부산귀농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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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농일기

제목 : [2004년 7,8월호] 귀농일기 - 최종자(1기)

작성자: 사무국

조회: 3357 등록일: 2008-0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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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낫과 호미로 짓는 농사이야기
                                                                                                       최 종 자 ( 1기 )
우리 밀을 심으세요

귀농을 계획하는 사람이면 누구나 귀농후의 작물을 생각하지 않을 사람이 없겠지만, 난 처음부터 심고싶은 작물이 무던히도 많았다. 
그 첫째가 감자 다음으로 옥수수, 콩, 땅콩, 완두콩, 강낭콩, 작두콩, 보리, 밀, 참깨. 들깨, 녹두, 검은팥, 붉은팥, 마늘, 고추, 파, 오이, 상추, 부추, 생강, 근대, 아욱, 쑥갓, 홍황, 마, 고구마, 목화 등 구할 수 있는 씨앗과 모종은 다 구해서 심어봤다.  그 중 우리 밀에 대한 애착으로 밀농사 이야기를 적으며 여러분에게 권유해 본다.

1999년 주말농사를 시작하던 첫 해, 가을작물로 밀, 쌀보리, 겉보리, 마늘, 시금치를 심기로 계획하고 준비를 했으나, 주말농사란 그리 쉬운 것이 아니었다.  그날에 못하면 일주일 뒤로 밀리다보니 어느 새 11월이 되고, 도로변 논에 보리 싹이 파랗게 자랄 때 풀 거름 만든 것을 대충 넣고 겨울을 지나니 얼어죽을 것만 같아 밀 알을 땅이 안보이게 뿌렸다.  그 옆 이랑에는 쌀보리, 또 그 옆 이랑에는 겉보리를 조금 심어 놓았으나, 첫 추위는 닥치고 땅은 얼어붙고 너무나 추웠다. 
땅이 얼지 않는 부산에 비하면 하늘과 땅만큼 차이가 있었다.  주말마다 추위에도 불구하고 찾아갔지만, 밀 싹은 올라올 기색도 없었다. 
애타는 마음으로 한해가 저물고 입춘이 지나 땅이 녹기 시작하니, 땅이 갈라지면 귀엽고 여린 새싹이 흙덩이를 받쳐이고 올라왔다.

“아지매! 우짤라꼬 밀을 그러치도 많이 퍼부았노. 너무 배서 안되겠다. 좀 소카내라” 이웃집 할머니가 핀잔을 주셨다.  밀 한되면 한 마지기는 심는단다.  이렇게 시작된 나의 밀농사는 이제 5번의 수확을 하였으며, 해마다 조금씩 늘려 10되를 생산하게 되었다. 10되가 되면 빻아준다던 인근 창원에 우리 밀 가공공장은 문을 닫아 텃밭 농사를 짓는 귀농자의 이리 저리 답답하고 대책 없는 막막함을 느꼈다.  
그러나 여기서 멈출 수는 없었고 생밀로 밀가루를 만드는 이 외의 소비방안을 찾아보았다.  처음에는 밀을 볶아 보리차 대신으로 활용하고, 볶은 밀을 가루로 만들어 보고, 통밀을 그냥 곱게 갈아 부침개, 수제비 정도 해먹을 수 있었다.  누룩도 만들고, 엿기름도 만들고, 콩을 섞어 삶아 발효해서 고추장 메주도 만들었다. 
그러나 가장 많이 유용하게 쓰이는 것은 콩과 찹쌀을 섞어 미숫가루를 만드는 것이다.  이렇게 내가 생산한 것을 계획에 따라 소비하게 되기까지 많은 시간이 흘렀고, 이젠 마음 편하게 해마다 밀농사를 짓는다.

내가 밀농사를 좋아하는 이유는 밀은 가을에 심기 때문이다.  나의 경우는 고구마, 팥, 콩을 거둔 밭에 거름을 넣고 심는다. 
이곳은 입동 전에 꼭 심어야 여름 작물에 지장이 없는 것 같다.  2모작을 하는 논보리는 10월중에 파종해서 상당히 자란 모습으로 겨울을 지낸다.  낙엽이 지고 추수가 끝난 황량한 들판에 씩씩하게 자라는 보리는 우리 눈을 즐겁게 해 주듯이 내 텃밭의 밀도 겨우내 아침마다 나의 시선을 그리로 몰아간다. 
지난해는 마당가 빈 공간에도 점점이 뿌려 겨울동안 즐기고 초여름에 거두었다.  겨울이면 어느 작가의 ‘보리예찬’이 생각나고, 누렇게 익어 가는 밀 이삭을 보면 개구쟁이들이 모여 밀서리를 하며 “냠냠 범범꾸”를 외치는 ‘요람기’의 장면이 그려지는 추억의 작물이 되기도 한다.

이렇게 겨울과 봄을 지낸 밀은 5월말에서 늦어도 6월초에는 거두어들인다.  난 처음에 밀을 키대로 베어서 천막을 펴고 말려 이삭을 막대기로 두드렸다. 
먼지도 많이 나고 밀 알도 튀어 나가고 밀짚에는 밀 이삭이 많이 남기도 하고, 힘들고 아까워 마음도 불편했다.  그러나 지금은 세워진 채로 이삭만 미리 자른다. 양이 적어 골고루 펴 말리기도 쉽고, 힘도 덜 들지만 베는 수고는 2번 해야한다. 
밑부분은 그루터기까지 싹잘라서 이삭이 제법 보이지만 그대로 닭장에 넣어주니 마음도 편하고 닭먹이도 되고 거름도 되니 정말 좋다. 
이래서 농사짓는 집에서는 가축이 있어야 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삭만 말린 밀을 두들겨 알을 빼고, 빈 이삭을 추린 뒤 껍질을 바람에 날리거나 키로 통밀을 만든다.  다시 먼지를 씻고 돌을 골라내는 절차를 밟아 좋은 볕에 말린다. 
깨물어 보아 딱 소리가 날 정도로.

이렇게 기르기 쉬운 밀이지만 밀농사를 짓는 사람은 드물다.  보리는 정부에서 수매도 하고 새품종 보급도 한다지만 밀은 그렇지 않다. 
내어린시절 햇밀가루가 나면 국수를 만들어 벼가 한창 자라고 있는 논둑에 차려놓고 정성을 올리던 어느 어르신의 모습이 기억 속에 남아있다.  아마 ‘유두차사’였던 것 같다.  밀농사에 대한 감사와 벼농사(풍년)에 대한 기원이었을 것이다. 
밀은 보리와 달리 쌀과 함께 제사상에도 올라간다고 소중히 여기던 작물이었으나, 이제는 씨앗 구하기도 힘들게 되었다. 
우리 밀은 뜨거운 적도를 넘어온 수입 밀과는 비교되지 않는 좋은 먹거리일 뿐 아니라 특별한 약효가 있어 예로부터 민간에서 많이 쓰였다. 
통밀가루를 치자 물에 반죽해 삔 곳에 붙여 매거나, 종기에 붙이면 저절로 나았다.  최근에 들은 이야기인데 유방암 예방에 아주 좋은 식품이며, 밀을 볶아 달인 물은 식은땀 흘리는 사람에게 좋은 약이라고 한다.  통밀을 우려낸 물, 금방 싹트는 밀 싹도 좋은 약재요 건강식이며, 통밀밥은 배변의 효과가 크다.

가을에 심어 노는 땅 활용하고 겨울동안 풀 매는 어려움도 없고 좋은 건강식으로 누구나 쉽게 생산 활용할 수 있는 우리 밀을 주변에 아주 작은 공간에라도 꼭 심어보세요. 올 가을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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