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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농부의 휴식

작성자: 강성진

조회: 7212 등록일: 2013-0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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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네 번째 맞이하는 여름이지만 해가 갈수록 적응안되는 여름이기도 합니다.
절기상으로 이미 가을로 들어선 입추가 지났건만 이놈의 폭염은 좀처럼 기세가 누그러들지 않는군요.
그리 넓지도 않은 땅덩어리에서 위쪽은 한동안 물폭탄을 맞아 난리가 났고,
아래쪽은 벌써 보름이 넘게 폭염으로 고생을 하는 등 온나라가 심한 여름앓이 하고 있는 듯 합니다.
이곳 합천도 덥고 추운 걸로 겨루자면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로
매년 관측사상 최고 기온과 최저기온의 기록을 갈아치우는데 한몫 하는 곳이지요.
 
중부지방의 장마전선이 물러난 지난 8월 초부터 전국적으로 폭염특보가 내려졌다지만
이곳 합천을 비롯한 영남내륙지방은 그보다 훨씬 이전인 7월중순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폭염주의보와 경보를 번갈아가며 발령해 오고 있을 정도로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고 있습니다.
말이 30도를 넘는 더위라지만 피부로 느끼는 온도는 그 이상이지요.
심지어 어제 이곳은 38도까지 수은주를 올려놓았습니다. 그야말로 숨이 턱턱 막히는 지독한 여름을 지금 한창 나고 있습니다.
 
사람은 사람대로 이 더위에 죽을 맛이지만 땅파먹고 사는 입장에서 이 더위가 보통 야속한 게 아니군요.
올해로 세 번째 시도하는 토마토 여름재배가 날씨가 이렇게 지속된다면 타격을 입을 것이 눈에 훤하기 때문이지요.
10월에 수확을 기대하며 하우스에서 기르고 있는 토마토들도 보름이상 지속되는 폭염에 사람들 만큼이나 힘들고 지쳤나 봅니다.
아침 저녁으로 더위에 물이 마르지나 않았는지 혹시 병든녀석들은 없는지 부지런히 이골 저골 물조리개를 들고 다니며
살핀다고 살폈는데 여기저기서 하나둘씩 이파리가 시들어 힘없이 축 처져 죽는 녀석들이 생겨납니다.
차라리 어릴 때 이렇게 시들기라도 하면 그나마 맘이나 덜 아플텐데,
어렵게 수정이 되어 열매를 조그맣게 달고 잘 커나가던 녀석들이 이렇게 시들어버리면 그 허망함은 이루 말할 수가 없네요.
 
이런 상황을 작년, 재작년에도 겪었고, 올해도 어느정도 예상하고 마음의 준비도 어느정도 됐다고 생각했는데
아직 이런 일에 태연해 지려면 좀 더 긴 세월 땅을 파야 할 것 같습니다.
그나마 작년만큼 빠른 속도로 번져나가는 것 같지는 않은 걸 감사하게 생각하고 하루 빨리 이 폭염의 기세가 누그러뜨려지고
적당한 햇살과 바람이 우리 토마토들을 키워주기를 바라는 수 밖에는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얼마전 쏟아진 물폭탄때 완파 피해를 입은 위쪽지역의 농부님들에 비하면
이렇게나마 나중에라도 수확을 볼 수 있는 걸 감사하게 생각해야 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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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들 이 여름 어떻게 보내고 계신지요?
저도 요즘은 SNS시대라고 스마트폰을 통해 열심히 여러사람들과 소통을 합니다만,
요즘 들어가보면 거의가 여름휴가와 피서 간 이야기들로 채워져 있더군요.
 
‘올해 여름휴가는 언제 받지? 어떻게 보낼까? 피서는 어디로 갈까?’
불과 몇 년전 도시에 살 때 만해도 여름철이면 항상 고민했던 질문들입니다.
일년에 몇 일 되지도 않는 휴일, 그것도 가장 더울 때 받는 휴식이라 어떻게든 잘 놀아야 겠다는 생각에 계획도 거창하게 세우곤 했지요.
막상 휴가지나고 생각해보면 돈 써가며 움직인 걸 후회 할 때가 많긴 하지만
그래도 여름 휴가는 도시 직장인들에게 매력적인 단어인 것만은 사실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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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농부에게 여름휴가란 어떤 의미일까요?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자면, 물론 제 사견입니다만,
별 의미없는 단어라는 걸 여기서 농사지으며 살다보니 느낍니다.
여기서 의미없다는 게 그만한 가치가 없다는 게 아니라, 특별히 휴가라고 이름붙여가며 쉬지는 않는다는 뜻이죠.
농사라는 게 도시의 직장처럼 몇시에 출근해 몇시까지 퇴근하고 주5일제니, 놀토니 하며 노동시간이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기에
그만큼 ‘쉼’에 대한 개념도 상당히 모호하거나 주관적일 수 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o:p></o:p>
저의 예로 들자면 요즘같은 무더위에는 하루에 들에 나가 일할 수 있는 시간이 얼마 안됩니다.
어둠이 가시는 새벽 동틀녘에 하우스 일하러 들어갔다가 볕이 본격적으로 내려쬐기 시작하는 오전10시가 되면
일부러 하우스안에 머물고 싶어도 머물수가 없지요.
보통 요즘 날씨에 이쯤되면 하우스 온도가 40도에서 50도를 오르내리니 멋모르고 좀 더 일하고 나가려는 욕심에 머물렀다가는
일사병으로 하우스안에서 비명횡사하는 경우가 생기지요.
실제로 연세 드신 분들이 여름이면 이런 사고를 많이 당해 돌아가시기도 하고 저도 작년에 한 번 욕심을 부리다
병원 신세를 진 적이 있어 그 이후로는 머리가 따끈해진다 싶으면 두말없이 하우스를 탈출해 나온답니다.
 
그렇게 나와서 잠시 쉬다가 바깥에서 할 수 있는 일하다가 점심을 먹으러 가지요.
그렇게 점심을 먹고 한낮 땡볕아래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기에 집에서 선풍기바람 쐬고 낮잠을 청합니다.
그도 그럴것이 꼭두새벽부터 움직이기 때문에 점심을 먹고나면 자연스레 눈꺼풀이 무거워 지지요.
그렇게 한낮 더위를 피해 쉬고 난 후 움직이는 시간이 햇살의 기운이 좀 누그러지는 오후5시정도.
이때부터 시작해 해가 지고 어둠이 깔리는 8시 정도까지 바짝 일하면 그날의 일과가 끝이 나지요.
얼핏보면 도시근로자들과 비슷한 패턴으로 일 하는 것 같지만 자세히 계산해보면 농부들은 쉬는 시간이 훨씬 많지요.
이렇게 비교해보니 우스개소리로 ‘농부들은 게을러서 못산다’는 말이 설득력이 영 없는 말은 아닐 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려!!!
우쨋든 농촌의 생활패턴 자체가 이렇다보니 특별히 쉬기위해 며칠씩 날짜를 낼 필요를 못느끼는 지도 모르겠습니다.
 
물론 도시에서의 휴가와는 다른 성격이지만 농부들에게도 나름의 휴가는 있습니다.
모내기가 끝나는 6월하순쯤 모내느라 수고했다고 서로 격려하는 의미로 십시일반해 마을에서 고기파티를 한다거나
요즘같이 한창 무더울 때 하루정도 날을 잡아 마을근처 개울가에 솥단지 걸고 하루 푹 쉬는 것으로 자체 휴가를 가지는 것이지요.
도시에서의 휴가가 개인 혹은 가족단위의 휴가라면 여기서의 휴가는 마을이웃 내지는
같은 작물을 재배하는 공동체 단위의 집단 휴가가 많다는 것이 차이라면 차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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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며칠전 여기서 함께 친환경 고추농사를 짓는 ‘한볕농부들’ 식구들과 함께 마을을 지나는 고가다리
시원한 그늘아래서 솥단지를 걸어놓고 하루종일 먹고, 떠들어가며 재밌는 하루를 보냈습니다.
혹시 시골에서 살아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시골에서 한 번 논다고 하면 대강대강 준비는 없지요.
우리 식구들도 그날 하루 잘 쉬기위해 그 전날 각자 일들을 열심히 마무리해 놓고 아침부터 형수님들은
고기, 과일, 떡, 갖가지 반찬까지 손수 준비하고 남정네들은 남정네대로 편하게 쉴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기 위해
아궁이를 만들어 불지피고, 앉아서 편하게 먹을 수 있는 야유회 테이블과 의자를 부지런히 실어나르는 등
그야말로 떠들썩한 잔치준비를 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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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핏보면 이게 무슨 휴가냐 할 정도로 쉬는데도 많은 땀과 정성이 필요했지만 이렇게 웃으며 준비하고 즐기는 과정자체가
서로에게 위안이되고, 마음의 평화를 선사하는 작은 휴식이 아니었나 생각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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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도시에서 나 혹은 우리가족들만의 휴식을 가지기 위해 치러야했던 비용과 시간으로 치면
얼마전 제가 여기서 우리 한볕 식구들과 함께 가졌던 휴식에 든 시간과 비용은 몇 분의 일도 안될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그 휴식이 끝난 후 돌아온 삶의 재충전된 에너지는 도시의 그것에 몇 배 이상인 것 같습니다.
이번 휴가 덕에 농부라서 행복한 일이 하나 더 생겼습니다. 이렇게 재밌게 쉴 수 있다는 거!!! 
저희 키다리 농장을 아시는 모든 분들께!!!
비록 이 여름 뜨거운 햇살이 우리를 괴롭혀도 슬퍼하거나 노여워하지 말고 꿋꿋히 잘 이겨내시길 기원하며 긴 사설 여기서 줄입니다.
건강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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